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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전

박유전은 조선 헌종 1년(서기 1835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왼쪽눈을 다쳐 불행하게도 애꾸가 되었고 보기흉한 외모 때문에 밖에서는 놀림을 받고 집에서는 천덕꾸러기로 자랐다고 한다. 박유전은 어려서 보성에 이주해 살았는데 지금의 보성군 보성읍 대야리 강산마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박유전의 부친도 명색 소리꾼이었기에 그의 형에게 소리공부를 시키고 그에게는 땔나무를 하게 하였으나 담너머로 귀동량해 독공한 소리가 그의 형보다 뛰어나 그후 소리를 배우게 되었다 . 이후 박유전은 심청가의 완성과정에서 애절한 가락을 보다 많이 가미하고 조곡을 재조정해서 슬픈대목을 더욱 슬프게, 비창한 장면은 더욱 처절하게 다듬질하였는데 이같은 창제를 서편제라 했다. 25세에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에 나가 심청가로 장원하고 전라감사의 주선으로 상경해 대원군을 만나게 된다. 대원군은 그의 기예에 감탄하여 강산이라는 호와 무과 선달의 첩지를 내리고 금토수와 오수경을 선물하였다. 그후 대원군의 실각으로 귀향한 박유전은 1906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그가 죽은 후3일동안 밤이면 마을 뒷산에서 「내 소리 받아 가라」는 혼백의 외침이 있었다한다.

정재근

정재근(1853~1914)은 조선조 말 고종 시대의 판소리 명창으로 나주에서 태어나서 보성에서 거주하였으며, 고종 무렵에 활동했던 명창이다. 그의 집안은 보성 일대에서 대대로 활동하던 광대 집안이었다. 어려서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흥선대원군(1820∼1898)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박유전(1834∼1906 추정) 명창이 말년에 보성에 거주할 때, 정재근은 그로부터 소리를 배웠다고 전한다. 정재근은 원각사(1906) 시절에 서울에서 활동을 하였고, 이때 조카인 정응민(鄭應珉, 1896∼1963)을 서울로 데려가서 소리를 가르쳤다고 전한다. 정재근의 원각사 등의 공연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정재근의 소리는 아들 정봉민(鄭奉珉)과 조카 정응민에게 전승되었으나, 정봉민이 23세에 요절하는 바람에 정응민만이 그의 소리를 전승하게 되었다. 박유전-정재근-정응민-정권진으로 전승된 「심청가」는 그의 거주지를 따서 보성소리라고도 하며, 1974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박유전이 판소리 서편제를 창시한 인물로 알려진 만큼 보성소리 「심청가」는 대표적인 서편제 판소리 바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보성소리 「수궁가」와 「적벽가」 역시 박유전으로부터 정재근을 거쳐 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응민

1896년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 도강 마을에서 태어난 정응민은 그의 백부 정재근에게 소리를 배웠다. 정응민을 통해 서편제에서 발전한 강산제에 동편제 소리가 어우러지고 다시 중고제 특유의 경제가 조화된 이른바 보성소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것은 정응민의 보성소리가 서편제에 속하면서도 동편제의 춘향가를 별도로 보존하는 계기가 된다. 소리꾼이 하대 받던 시절 정응민은 보기드물게 선생의 칭호를 받았고 마을 사람들은 회의를 열어 그에게만은 공대를 하기로 했다는 일화가 있는데이는 윤판서 댁에서 배웠던 한학을 기초로 제자를 가르쳤고 「초승달 뜨면 달을 향해 큰절하고 초승달 같이 행신하라」며 제자들에게 엄중하였던 그의 처신에서 비롯된 듯 하다.

조상현

조상현(趙相賢, 1939- )은 전남 보성군 겸백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 본명은 조상석(趙相錫)이다. 그는 13세(1951)에 전남 보성군 회천면 영천리에 살고 있던 정응민(鄭應珉, 1896-1963)을 찾아가 7년 동안 소리 공부를 했다. 단가 〈운담풍경〉 등을 배운 뒤 2년간 〈심청가〉 한 바탕을 익혔으며, 이어서 〈춘향가〉와 〈수궁가〉를 학습했다. 19세에 광주국악원의 정광수(丁珖秀, 1909-2003)로부터 1년간 〈흥보가〉를 배웠으며, 20세부터 4년간 호남국악원에 조교로 있으면서 박봉술(朴鳳述, 1922-1989)을 스승으로 모시고 〈적벽가〉를 공부했다. 32세에 상경해 박록주(朴綠珠, 1909-1979)의 양아들로 들어가 1년간 〈흥보가〉를 익히고 3년간 독공했다.

이후 정권진(鄭權鎭, 1927-1986) 문하로 들어가 〈심청가〉를 전수받았다. 유영애(劉永愛, 1948- ), 이숙영(李淑英), 주소연(朱笑燕) 등이 그의 제자이다. 조상현은 26세부터 32세까지 7년간 전남 목포의 유달국악원(儒達國樂院) 판소리 사범으로 있었다. 당시 목포문화방송국 국악 프로그램에 3년 동안 출연해 호남 일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33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2년간 수십 편의 창극에서 주연으로 활약했으며, TBC 방송의 국악 프로그램에 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35세에 판소리보존연구회를 발족했으며, 38세에 제2회 전주대사습 판소리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51세에 광주시립국극단의 초대단장이 되어 10여 년간 재직하면서 창작국악 〈놀보전〉, 〈아리랑〉 등을 제작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2000)은 조상현의 〈창본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도 조상현의 공연 장면에서 시작하고 맺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조상현 판소리 창극 춘향가』 1-4는 그가 직접 연출하고 구성한 음반이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춘향가』는 명반으로 꼽히는 춘향가 음반이다. 조상현은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2008년에 해제되었다. 그가 부르는 〈심청가〉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정재근(鄭在根)-정응민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춘향가〉도 그의 장기이다.

성창순

성창순(成昌順, 1934-2017)은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서 태어난 판소리 여성 명창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명창이자 명고였던 성원목(成元睦, 1912-1969)의 딸이다. 15세에 김연수를 따라나서 5년간 김연수창극단, 임춘앵여성국극단, 동일창극단 등에서 단원으로 활동했다. 36세에 스승 김소희를 따라 일본으로 교포 위문공연을 갔을 때, 그곳에서 〈춘향가〉와 남도민요 음반을 취입했고 이를 계기로 이름을 알렸다. 42세에 남원춘향제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을 했다. 44세에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했으며, 〈심청가〉를 완창했다. 45세에 〈춘향가〉 완창 공연을 했으며,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49세에 전남대 강사로 활동했으며, 59세에 전통예술보존회를 설립했다. 62세에 자서전 『넌 소리 도둑년이여』를 출간했으며, 77세에 자신이 보성에 들어와 공부했던 자리에 전라남도 보성 판소리 예술관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르는 〈심청가〉는 박유전(朴裕全, 1835-1906)-정재근(鄭在根)-정응민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기품 있고 우아한 성음을 지닌 명창으로 평가된다.

성우향

성우향(成又香, 1935-2014)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에서 태어난 판소리 여성 명창으로, 본명은 성판례(成判禮)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명고수이자 정가 및 피리의 명인 성차옥의 조카이다.12세에 조상선(趙相鮮, 1909-?)의 수양딸이 되어 동일창극단의 순회공연에 참여했다. 30대에 임방울(林芳蔚, 1904-1961)의 창극단에서 활동했다. 26세에 킹스타레코드에서 〈심청가〉, 27세에 신세기레코드에서 〈춘향가〉, 대도레코드에서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 33세에 대도레코드에서 〈심청가〉를 취입하는 등 인기가 높았다. 40세에 〈춘향가〉, 42세에 〈심청가〉, 43세에 〈흥보가〉를 완창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42세에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이때부터 10여 년간 국립국악원에서 근무하며 공연 활동을 활발히 했다. 이후 서울대, 중앙대, 추계예대, 서울예전, 서울국악예고 등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02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르는 〈춘향가〉는 김세종(金世宗)-김찬업(金瓚業)-정응민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심청가〉도 그의 장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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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2020.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