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C시사인터뷰 WHO(11-21)
- 글번호
- 297397
- 작성일
- 2009.03.10 22:33
- 조회
- 296
사회자: 조정래씨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보성 벌교에서 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분단 민족의 역사적 진실을 태백산맥을 통해서 밝히고자 했던 소설가 조정래씨 그의 이념적인 도전은 오늘날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요 시사인터뷰 후가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를 찾아 갑니다.
(6년 간의 집필, 16,500장의 원고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
한국 문학사에 우뚝 선 조정래 문학의 절정 태백산맥
보성 벌교에서 태백산맥이 살아난다
단일작품 최대규모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 11월 21일 )
네번째 만남 소설가 조정래
- 1943년 전남 승주 출생
-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 1970년 소설 '누명'으로 데뷔
- 태배산맥, 아리랑, 한강 집필
-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 현)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사회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생님
조정래: 네 안녕하세요.
사회자: 보성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김제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서 두 번째인데요 6.25전후의 민족분단적 상황에서 역사적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념관이어서 기대가 큽니다 우선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조정래: 김제에 아리랑 문학관이 서고 나서 또 태백산맥 문학관이 벌교에 선 것은 제가 한 일에 비해서 사회적 대우를 너무 과분하게 받는 것 같아서 너무 황송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평생에 걸쳐서 글을 쓴 사람으로서의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자: 80년대 나이 마흔에(태백산맥) 집필을 시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말 못할 고충들을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료들이 태백산맥 문학관에 그대로 소장 돼 있는데요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주시죠 어떤 고통들을 겪으셨습니까
조정래: 그러니까.. 제가 83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전두환 정권이어서 학생들의 군사독재 타도의 운동도 85년 쯤이나 일어나던 그러한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태백산맥을 쓰는 동안에 일부가 나오고 나니까 그 일부가 사회적 반응이 커질수록 공갈 협박을 하는 누군지도 모르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밤중에 새벽 1시 2시에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 10년 동안 계속 됐고 그리고 태백산맥을 마치고 난 다음에 검찰에서 수사를 해야 되겠는데 그때 이미 350만부가 팔렸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수사를 하지는 않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1994년에 8개의 반공 단체들이 모여서 저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속칭 빨갱이로 고발을 해버렸습니다 그 고발을 당해서 11년 동안 경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아리랑을 쓰고 한강을 쓰고 그 사이 정권이 두번 빠뀌고 2005년에 무혐의 처리를 받으면서 11년만에 사건이 종결이 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회자: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쓰게 된 힘의 원천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조정래: 제가 인제 태백산맥만 쓴게 아니고 이어서 아리랑, 한강을 쓰면서 20년 세월을 보냈는데 많은 독자들께서 그걸 의문을 갖고 답을 알고 싶어하고 하는데 그걸 한마디로 하기는 어렵고 여러가지가 복합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작가로서 남다른 작품을 쓰고 싶은 욕구가 첫 번째일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험난한 역사 속에서 분단 상황때문에 역사 진실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그러면 작가로서 작가의 역할은 그시대의 산소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 산소 역할이라는 것은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른 쪽으로 가라는 뜻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안쓰는 것은 비겁이다 그래서 그걸 쓰게 된 것이고 세번째는 분명히 작가로서 봤을때 이거는 역사의 거대한 광맥이다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그것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열정 집착 이런것들이 합해져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사회자: 소설 속에서의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 굉장히 기억들 많이하고 있고 한때는 유행어처럼 회자되기도 했는데 그런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 현장에서 채취한신 것입니까 아니면 상상력에서 나오신 것입니까?
조정래: 많은 분들이 취재했냐고 묻는데 전혀 그게 아니고 저는 광주 서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고향 전라도를 떠나서 지금까지 서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시다시피 사투리를 안 쓰는데 우리 고향말을 쓸려고 하면 저 캄캄한 어둠속에서 수 없이 많은 불빛이 떠오르는 것처럼 판소리 가락에 맞춰서 이야기가 그대로 나옵니다 이걸 문학적 용어로 하면 육화 됐다고 하는건데.. 육화 온 몸에 다 젖어 있다는 거죠 제 영혼 혹에 어린시절에 들었던 고향말이 완전히 아로새겨져서 다시 재생되어 나오는 거죠
사회자: 여순 사건이 태백산맥 소설의 초반부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선사건은 아직도 묻혀 있습니다. 반란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수많은 지역민들이 희생됐지만은 정당한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조정래: 저는 태백산맥을 쓸때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붙여놓은 이름을 지문에서 지문이라고 하는 것은 소설가가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문장을 써나가는 것이고 대화는 지문과는 다른 것입니다 대화는 작가가 써도 그건 주인공들의 언행이기 때문에 책임질 필요가 없고 지문은 작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문에서 조차도 반란을 뺐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만들어놓은 공식명칭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수.순천 반란 사건이라고 하면 여수와 순천 시민 전부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됩니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극히 일부의 세력이 한 행위기 때문에 그것은 여수.순천 시민들의 명예훼손(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시정돼야합니다
(분단문학의 백미 '태백산맥'
민족혼을 일깨우는 '아리랑'
민족의 힘 '한강'까지
섬세한 역사정신과 굳건한 작가의식으로 보여준 근대문학의 진수
끝없이 밀려오는 진실의 파도를 외로이 헤엄쳐 나갔던 소설가 조정래)
사회자: 모름지기 작가는 그 사회의 산소라고 조금 전에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작금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홍에 대해서 산소와 같은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년만에 흔히 말하는 보수정권이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10년동안 진행돼 왔던 분배와 균형정책이 성장주의 정책으로 변하면서 광주.전남도 소외가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조정래: 정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정권이든 간에 잘하느 일과 잘못하는 일은 병존합니다. 그 오류를 범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정권은 반드시 바뀌어야 하고 그게 국민의 뜻입니다. 그러나 정권은 바뀌되 국가 차원에서 계속 발전한는 정치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죠 또 진보가 잡아야 됩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해야되는데 보수가 잘못되어서 역사를 퇴행시키고 후퇴시키는 일을 벌리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 국민의 이름으로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자: 태백산맥으로 인해서 10여년간 선생님께서는 국가 보안법의 족쇄에 매여 있었는데요 요즘 특히 모 대학교수의 사상논쟁이나 모 연예인의 기부행위를 이념적 시각으로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이념적 논쟁이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입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의 이념적 갈등 어떻게 보십니까
조정래: 한마디로 말하면 시대 착오적이고 사회적 정신병 현상이죠 왜냐하면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중국과 우리는 수교했습니다 또 베트남과도 수교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구소련과도 수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분단은 같은 민족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젠데 왜 그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반공주의 시대가 군부독재를 타도하면서 없어졌고 북한과 10년의 걸쳐서 우리는 민간수교를 계속하고 세상이 다 알다시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다 열었습니다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존재의 이유인데 이제와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이런 역사적 퇴보를 해서 되겠습니까 우리 사회적으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특정집단의 횡포입니다
사회자: 문학계에서 진보 즉 좌파는 조정래 우파 보수는 이문열 이렇게 보는 시각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조차도 문제가 있는 이분법적 시각이라고 보는데 진정한 보수와 진보 어덯게 생각하십니까
조정래: 우리가 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면 진보와 보수는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해야하는 것입니다 보수 가치가 다 나쁜게 아니죠 일부분이 나쁜것입니다 진보의 가치가 다 옳은 것이냐 또 일부분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상호 보완적으로 굔형을 이루면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해서 건전한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그 노력을 바칠때 두 가지 다 가치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끝으로 이번에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조정래: 제가 태백산맥을 쓴 근본적인 이유가 두가지 있는데 분단상황을 좀 더 이성적으로 극복하자 뛰어넘자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리고 빨치산이나 좌익을 했던 사람들이 최소한 악마나 흡혈귀가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희노애락을 아는 인간이었다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싶었던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평소에 통일의식을 거의 갖지 못하고 바쁜 일상생활을 사는데 작품을 통해서 통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영원한 숙제고 과제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은 그 두가지 이유 때문에 썼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태백산맥 문학관을 들여다보고 전시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고 제가 겪었던 여러가지 고충 그것들이 다 전시 돼 있으니까 그걸 보면서 독자들, 일반인들께서 제가 원하는 그러한 것들을 다시 체험하면서 통일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새롭게 받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늘 건강하시구요. 고향에도 자주와 주시기 바랍니다.
조정래: 예 고맙습니다.
사회자: 고맙습니다.
(그는 역사, 민족, 분단에 대한 역사적 수난과 아픔을 종이에 옮겼다
그리고 그의 종이에 담긴 주인공은 바로, 그 시절의 국민 모두였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조정래)
시사인터뷰 Who 다음 이시간에....
(6년 간의 집필, 16,500장의 원고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소설
한국 문학사에 우뚝 선 조정래 문학의 절정 태백산맥
보성 벌교에서 태백산맥이 살아난다
단일작품 최대규모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 11월 21일 )
네번째 만남 소설가 조정래
- 1943년 전남 승주 출생
-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 1970년 소설 '누명'으로 데뷔
- 태배산맥, 아리랑, 한강 집필
- 대한민국 문학상 수상
- 현)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사회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선생님
조정래: 네 안녕하세요.
사회자: 보성 벌교에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김제에 있는 아리랑 문학관에 이어서 두 번째인데요 6.25전후의 민족분단적 상황에서 역사적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념관이어서 기대가 큽니다 우선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죠
조정래: 김제에 아리랑 문학관이 서고 나서 또 태백산맥 문학관이 벌교에 선 것은 제가 한 일에 비해서 사회적 대우를 너무 과분하게 받는 것 같아서 너무 황송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평생에 걸쳐서 글을 쓴 사람으로서의 보람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자: 80년대 나이 마흔에(태백산맥) 집필을 시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당시 빨갱이 소리를 들으면서 말 못할 고충들을 많이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자료들이 태백산맥 문학관에 그대로 소장 돼 있는데요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주시죠 어떤 고통들을 겪으셨습니까
조정래: 그러니까.. 제가 83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는 전두환 정권이어서 학생들의 군사독재 타도의 운동도 85년 쯤이나 일어나던 그러한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태백산맥을 쓰는 동안에 일부가 나오고 나니까 그 일부가 사회적 반응이 커질수록 공갈 협박을 하는 누군지도 모르는 정체 불명의 사람들이 밤중에 새벽 1시 2시에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 10년 동안 계속 됐고 그리고 태백산맥을 마치고 난 다음에 검찰에서 수사를 해야 되겠는데 그때 이미 350만부가 팔렸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수사를 하지는 않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1994년에 8개의 반공 단체들이 모여서 저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속칭 빨갱이로 고발을 해버렸습니다 그 고발을 당해서 11년 동안 경찰,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아리랑을 쓰고 한강을 쓰고 그 사이 정권이 두번 빠뀌고 2005년에 무혐의 처리를 받으면서 11년만에 사건이 종결이 되는 그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사회자: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쓰게 된 힘의 원천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조정래: 제가 인제 태백산맥만 쓴게 아니고 이어서 아리랑, 한강을 쓰면서 20년 세월을 보냈는데 많은 독자들께서 그걸 의문을 갖고 답을 알고 싶어하고 하는데 그걸 한마디로 하기는 어렵고 여러가지가 복합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작가로서 남다른 작품을 쓰고 싶은 욕구가 첫 번째일 것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험난한 역사 속에서 분단 상황때문에 역사 진실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그러면 작가로서 작가의 역할은 그시대의 산소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 산소 역할이라는 것은 진실을 밝혀내고 올바른 쪽으로 가라는 뜻인데 그것을 알면서도 안쓰는 것은 비겁이다 그래서 그걸 쓰게 된 것이고 세번째는 분명히 작가로서 봤을때 이거는 역사의 거대한 광맥이다 문학적으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소재다 그래서 그것을 반드시 써야 한다는 열정 집착 이런것들이 합해져서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사회자: 소설 속에서의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 굉장히 기억들 많이하고 있고 한때는 유행어처럼 회자되기도 했는데 그런 투박한 전라도 사투리 현장에서 채취한신 것입니까 아니면 상상력에서 나오신 것입니까?
조정래: 많은 분들이 취재했냐고 묻는데 전혀 그게 아니고 저는 광주 서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고향 전라도를 떠나서 지금까지 서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들으시다시피 사투리를 안 쓰는데 우리 고향말을 쓸려고 하면 저 캄캄한 어둠속에서 수 없이 많은 불빛이 떠오르는 것처럼 판소리 가락에 맞춰서 이야기가 그대로 나옵니다 이걸 문학적 용어로 하면 육화 됐다고 하는건데.. 육화 온 몸에 다 젖어 있다는 거죠 제 영혼 혹에 어린시절에 들었던 고향말이 완전히 아로새겨져서 다시 재생되어 나오는 거죠
사회자: 여순 사건이 태백산맥 소설의 초반부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선사건은 아직도 묻혀 있습니다. 반란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수많은 지역민들이 희생됐지만은 정당한 평가마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조정래: 저는 태백산맥을 쓸때 여순반란사건이라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붙여놓은 이름을 지문에서 지문이라고 하는 것은 소설가가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문장을 써나가는 것이고 대화는 지문과는 다른 것입니다 대화는 작가가 써도 그건 주인공들의 언행이기 때문에 책임질 필요가 없고 지문은 작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문에서 조차도 반란을 뺐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만들어놓은 공식명칭을 거부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수.순천 반란 사건이라고 하면 여수와 순천 시민 전부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됩니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죠 극히 일부의 세력이 한 행위기 때문에 그것은 여수.순천 시민들의 명예훼손(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시정돼야합니다
(분단문학의 백미 '태백산맥'
민족혼을 일깨우는 '아리랑'
민족의 힘 '한강'까지
섬세한 역사정신과 굳건한 작가의식으로 보여준 근대문학의 진수
끝없이 밀려오는 진실의 파도를 외로이 헤엄쳐 나갔던 소설가 조정래)
사회자: 모름지기 작가는 그 사회의 산소라고 조금 전에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작금의 정치, 사회, 경제적 상홍에 대해서 산소와 같은 얘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0년만에 흔히 말하는 보수정권이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10년동안 진행돼 왔던 분배와 균형정책이 성장주의 정책으로 변하면서 광주.전남도 소외가 깊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조정래: 정권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정권이든 간에 잘하느 일과 잘못하는 일은 병존합니다. 그 오류를 범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정권은 반드시 바뀌어야 하고 그게 국민의 뜻입니다. 그러나 정권은 바뀌되 국가 차원에서 계속 발전한는 정치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았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죠 또 진보가 잡아야 됩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해야되는데 보수가 잘못되어서 역사를 퇴행시키고 후퇴시키는 일을 벌리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 국민의 이름으로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자: 태백산맥으로 인해서 10여년간 선생님께서는 국가 보안법의 족쇄에 매여 있었는데요 요즘 특히 모 대학교수의 사상논쟁이나 모 연예인의 기부행위를 이념적 시각으로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그런 이념적 논쟁이 다시 살아난 듯한 느낌입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반목과 갈등의 이념적 갈등 어떻게 보십니까
조정래: 한마디로 말하면 시대 착오적이고 사회적 정신병 현상이죠 왜냐하면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했던 중국과 우리는 수교했습니다 또 베트남과도 수교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던 구소련과도 수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분단은 같은 민족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젠데 왜 그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반공주의 시대가 군부독재를 타도하면서 없어졌고 북한과 10년의 걸쳐서 우리는 민간수교를 계속하고 세상이 다 알다시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다 열었습니다 역사를 진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존재의 이유인데 이제와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이런 역사적 퇴보를 해서 되겠습니까 우리 사회적으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특정집단의 횡포입니다
사회자: 문학계에서 진보 즉 좌파는 조정래 우파 보수는 이문열 이렇게 보는 시각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조차도 문제가 있는 이분법적 시각이라고 보는데 진정한 보수와 진보 어덯게 생각하십니까
조정래: 우리가 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면 진보와 보수는 반드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해야하는 것입니다 보수 가치가 다 나쁜게 아니죠 일부분이 나쁜것입니다 진보의 가치가 다 옳은 것이냐 또 일부분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상호 보완적으로 굔형을 이루면서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해서 건전한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그 노력을 바칠때 두 가지 다 가치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끝으로 이번에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의 어떤 역할을 기대하십니까
조정래: 제가 태백산맥을 쓴 근본적인 이유가 두가지 있는데 분단상황을 좀 더 이성적으로 극복하자 뛰어넘자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리고 빨치산이나 좌익을 했던 사람들이 최소한 악마나 흡혈귀가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희노애락을 아는 인간이었다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싶었던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가 평소에 통일의식을 거의 갖지 못하고 바쁜 일상생활을 사는데 작품을 통해서 통일을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영원한 숙제고 과제라는 것을 일깨우고 싶은 그 두가지 이유 때문에 썼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태백산맥 문학관을 들여다보고 전시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고 제가 겪었던 여러가지 고충 그것들이 다 전시 돼 있으니까 그걸 보면서 독자들, 일반인들께서 제가 원하는 그러한 것들을 다시 체험하면서 통일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새롭게 받기를 바랍니다
사회자: 늘 건강하시구요. 고향에도 자주와 주시기 바랍니다.
조정래: 예 고맙습니다.
사회자: 고맙습니다.
(그는 역사, 민족, 분단에 대한 역사적 수난과 아픔을 종이에 옮겼다
그리고 그의 종이에 담긴 주인공은 바로, 그 시절의 국민 모두였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 -조정래)
시사인터뷰 Who 다음 이시간에....